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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상국진(尙國珍)은 백제의 재건 위해 고려에 대한 항쟁 주도조선 중기 명상(名相) 상국진 기로소에 들어 명성 떨쳐우리나라 상씨(尙氏)는 목천상씨(木川尙氏) 단본으로 인구는 2000년에는 2,293명이었다.문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삼한을 통합한 후 천안 목천지방의 백제유민들이 상왕산(확성산)에 웅거하여 강력 저항하며 백제의 재건을 위해 부흥운동을 펼쳐나가자 목천지방 유민에게 돈(豚).상(象).장(獐).우(牛)등 동물의 이름을 성씨로 갖게 했는데 후손들이 돈(頓).상(尙). 장(長).우(禹)씨로 성씨를 바꾸었다고 한다.(그러나 상씨 등은 이에 대해 와전일 뿐이며 옛 문헌에도 이미 각자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문헌에 따르면 상씨(尙氏)는 원래 중국 상당(上黨:산서성 기령도 노성현)에서 계출된 성씨로 당나라 덕종 때 병마사(兵馬使:절도사.고려때는 종2품)를 지낸 상가고(尙可孤)의 후예로 전한다.우리나라 상씨의 시조(始祖)는 목천(木川) 출신으로 고려초에 목천현장리(木川縣長吏)를 지낸 상국진(尙國珍)이다.상국진은 목천호장(木川戶長:고을아전의 맨 윗자리)을 지냈다고도 한다.장리(長吏)는 고려 시대에 외관을 보좌하여 지방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향리층으로 장리 또는 외리(外吏)라 불렀다. 이들은 그들이 복무하는 지역에 따라 주리(州吏).부리(府吏).현리(縣吏).부곡리(部曲吏) 등의 명칭을 가졌고, 조세와 역역의 징수를 비롯하여 간단한 소송을 처리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 대가로 이들에게는 외역전(外役田:향리전)이 지급되었다.그의 후손 상득유가 서기1059년(고려 문종 14)에 최충이 설치한 구재(九齊)의 하나인 대빙재(待聘齋)에서 수학하면서 향역을 면하게 되었고 원래의 성씨인 상(尙)씨로 회복하였다고 한다.대빙재(待聘齋)는 원래 서기1109년(고려예종(睿宗)4)에 국자감(國子監)에 설치한 7재(齋)의 하나로 상서(尙書)를 가르치던 곳이며 유학재(儒學齋)에 속한 칠재(七齋)였다.여기의 대빙재는 고려 문종 때 최충(崔 )이 송악산(松岳山) 아래 자하동(紫霞洞)에 마련한 9재(齋)의 하나로 국자감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상서를 가르치던 곳의 구재(九齋)이다.그 후 3세손인 상원이 급사(急使:급한 용무를 띤 사자 使者)를 지내며 주거를 임천으로 옮겨 10대를 세거하면서 조상들의 근거지인 목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후대로 내려와 후손들이 풍덕,원주,부여 등지에 산거하면서 파(派)를 형성하게 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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